-발단-
우리를 우리로 존재할 수 있게끔 만드는 차원은 분명 원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원형은 모든 것을 이어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나열-
떨어뜨린 수박, 먹다 버린 커피 우유, 도망가다 몸이 굳어버린 쥐, 양심 없는 이가 휴양지에 버리고 간 파라솔, 비행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수많은 건물, 여백 없이 들어선 건물들, 띄엄띄엄 떨어진 고급 주택들,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공간, 단절, 발자국과 신발, 사람이 남은 장소, 할 수 없었던 말들, 그것들의 흔적, 사라짐, 또는 빛, 빛을 받은 것과 자체로 빛나는 것, 눈부신 것, 볼 수 없는 것, 쉽게 보여주지 않는 것, 당신이 있었다는 사실.
-비슷한 이야기-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에서 마주한 풍경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연관 짓고 우리 세계에서 사람들이 서로 작용하는 효과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연결됨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비가시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어떤 대상은 존재의 가치를 잃어서 이 무의식의 차원으로 사라져서 영영 볼 수 없게 된다. 사실, 우리는 연결됨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 위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연결된다는 감각은 아주 희미한 것이므로, 우리는 어떤 이별에도 눈치채지 못한다.
작별 인사도 없이 이뤄지는 이별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러나 떠날 때를 안다는 것도 기적과 같은 것 아닌가? 모든 걸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게 늦었을 때뿐이다.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그들을 추모하는 것이다. 그러려고 일부러 대상을 지우는 행위를 한다. 혹은 어딘가로 사라진 형태를 그린다.